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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영월 여행 ] 슬픔까지 감출 수 없었나 보다 - 단종 유배지 청령포 -

by 뚜벅이의 계절여행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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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느 겨울보다 매서운 칼바람은 차가운 얼음강을 깨고 달려왔고, 수백 년의 세월 속에 녹아든 분노와 슬픔, 애절함, 비통함, 망향의 넋에는 한여인에 대한 그리움까지 묻어났습니다.

시린 겨울바람이 살갗을 에워싸는 어느 날, 화려한 용포를 벗어놓고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나이 어린 소년이 보였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듯하나 그의 눈은 살아있었고, 상심한 듯하나 기개를 잃지 않은 그의 모습은 어린 소년답지 않은 위엄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는 뒷모습에 내려앉은 '슬픔까진 감출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의 머리 위와 어깨에는 서글퍼고 서글퍼서 더 눈부신 하얀 눈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린 소년의 어깨에 앉았던 하얀 눈은 세월을 타고 눈물이 되었고 강물이 되어

뚜벅이의 가슴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쯤은 가봐야지 하는 곳이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 영월로 떠난 이유를 들라면
청령포 때문이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가면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이었던 비운의 왕 단종이 유배 왔던 청령포란 곳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했으나 병약했던 문종이 승하하자 그의 아들이었던 단종은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에 즉위했으나 숙부였던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원주, 주천을 거쳐 청령포란곳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어린 단종임금님의 슬픔을 간직한 곳이 바로
청령포입니다.

단종임금의 흔적이 서려있는 청령포를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흩트려졌던 마음을 일으켜 세워봅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론 육육 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영락없는 육지 속의 작은 섬입니다.

지금이야 강 건너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모터가 장착된 배를 타고 건넌다지만, 한나라의  임금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폐위되어  나룻배에 오른 그에겐 지리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외딴섬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룻배에 오른 단종임금에겐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는 황천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청령포에 발을 디디면 여행자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것 같은 노송숲이 넓게 펼쳐집니다.

노송의 안내를 받아 발길 머문 곳  단종어소입니다.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단종을 보필하는 궁녀들과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는 곳입니다.

책 읽는 단종임금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따금 찾아와 절을 하고 갔을 절개 있는 신하를 보며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영조임금 시절 세운 금표비도 보입니다. 동서로 3백 척~ 남북으로 490척 이내는 출입을 금한다는 표식입니다.

단송어소를 나오면, 울울 울창창한 노송들 사이로
유난히도 눈에 띄는 거송이 하늘을 찌르며 서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그 세월이 오래됐음을 짐작케 합니다.

유배생활을 하는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서
"볼 관(觀)"자와 때로는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소리 음(音)"자가 붙은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하는 600년 된 금빛 노송입니다.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둘로 갈라진 관음송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한을 보았고 슬픔을 들었고 위로가 되어 주었던 유일한 동무 같은 나무입니다.

동강을 따라 솟아있는 육육 봉이 보이는 절벽가에
어린 단종이 한양 땅을 그리워하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 하여 노산 대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옆으론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인 망향탑도 보입니다.

이렇듯 청령포를 걷는 내내 칼바람은 매서 눕게 불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임금자리에서 쫓겨나 유배생활을 했을 어린 단종의 심정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조금이나마 느껴 봅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청령포에 남은 그의 한들을
관음송이 말해 주는 듯하고,

세월이 흘렀음에도 청령포를 감싸고도는 강물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들을 새 강물에 담고담아
전해 주는 듯합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노았다 "
                                                  -  왕 방 연 -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 하고,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은 시조에 그때의 심정을 느껴봅니다.

- 찾아가는 길 -

청령포: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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